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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상식/이름 항렬표

함안 조씨 항렬표(돌림자), 족보

by 하누혀누2 2025.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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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조씨 항렬표(돌림자), 족보

우리나라에서 조씨 성을 사용하는 본관은 창녕 조씨, 풍양 조씨, 양주 조씨 등 다양합니다. 이 가운데 함안 조씨(咸安 趙氏)는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적지만, 뚜렷한 역사적 뿌리를 지닌 가문으로 꼽힙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함안 조씨의 인구 수는 약 6만 명 정도로 확인됩니다. 이는 전체 성씨 본관별 분포에서 중간 정도 규모에 속하며, 경상남도 함안군을 중심으로 세거하는 후손이 많습니다.

함안조씨 종문 문양, 앰블럼

시조는 조정(趙鼎)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중국 당나라 출신으로, 신라 말 고려 초에 동생 조부(趙釜), 조당(趙唐)과 함께 귀화하였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창성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크게 무찔러 공을 세웠고, 벽상개국공신에 책록되어 대장군 원윤(元尹)의 벼슬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함안을 본관으로 삼아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고증 가능한 최초의 실존 인물은 금은(琴隱) 조열(趙悅)입니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공조전서를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키며 은거하였습니다. 그의 후손 중 조려(趙旅, 1420~1489)는 생육신으로 꼽히며, 정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절(貞節)입니다. 함안 서산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어계집(漁溪集)』이라는 문집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함안 조씨가 단순한 성씨 집단을 넘어, 역사 속에서 충절과 학문, 정치적 업적을 남긴 가문임을 보여줍니다.

함안 조씨 항렬표(돌림자)

족보에서 중요한 것은 세대를 구분하는 항렬표(行列表)입니다. 항렬은 같은 혈통 안에서 이름자를 세대별로 맞추어 사용하는 체계로, 가문의 질서와 뿌리를 이어가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함안 조씨의 항렬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 21세: 영(榮)◯
  • 22세: 중(重)◯
  • 23세: ◯진(鎭)
  • 24세: ◯태(泰)
  • 25세: ◯식(植)
  • 26세: 성(性)◯
  • 27세: ◯규(奎)
  • 28세: 용(鏞)◯
  • 29세: ◯제(濟), ◯하(河)
  • 30세: ◯래(來), ◯상(相)
  • 31세: 현(顯)◯, ◯묵(默)
  • 32세: 재(在)◯, 주(周)◯
  • 33세: ◯흠(欽), ◯호(鎬)
  • 34세: ◯수(洙)
  • 35세: 동(東)◯
  • 36세: ◯환(煥)
  • 37세: ◯배(培)
  • 38세: 종(鐘)◯
  • 39세: 한(漢)◯
  • 40세: ◯근(根)
  • 41세: 형(炯)◯
  • 42세: ◯균(均)
  • 43세: 호(鎬)◯
  • 44세: ◯순(洵)
  • 45세: 병(秉)◯
  • 46세: ◯현(炫)
  • 47세: 기(基)◯
  • 48세: ◯석(錫)
  • 49세: 영(泳)◯
  • 50세: ◯수(秀)
  • 51세: 병(炳)◯

이 항렬표는 세대 간 질서를 유지하면서, 후손들이 가문의 뿌리를 의식하고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이 됩니다.

함안 조씨 역사 속 인물

함안 조씨는 충신과 학자를 많이 배출한 가문으로, 대표적인 인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열(趙悅): 고려 말 공조전서를 지냈으며, 고려 멸망 후 은거. 함안 조씨 실질적 중시조.
  • 조려(趙旅, 1420~1489): 생육신, 시호 정절, 『어계집』 저자.
  • 조동호(趙銅虎): 조려의 아들, 군수 역임.
  • 조순(趙舜, 1467~1529): 조동호의 아들, 문과 급제, 이조참판. 참판공파 파조.
  • 조삼(趙參, 1473~?): 사헌부 집의, 학문적 교류 활발. 호는 무진(無盡).
  • 조적(趙績, 1477~?): 문과 급제, 판결사 역임.
  • 조종도(趙宗道, 1537~1597): 호는 대소헌, 남명 조식 문인, 시호 충의.
  • 조임도(趙任道, 1585~1664): 호는 간송, 여헌 장현광의 문인, 『간송집』 저자.

세 형제가 동시에 문과에 급제하거나, 생육신으로 충절을 지킨 사례는 가문적 영예로 기록되었으며, 학문과 충의의 정신은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함안 조씨 족보

함안 조씨의 족보는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가문의 역사와 계보를 정리하는 핵심 문헌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 갑진보(1664년, 현종 5년): 함안 조씨 최초 족보. 시조를 신라 원윤으로 기록.
  • 무오보(1738년, 영조 14년): 시조를 고려 대장군 원윤으로 수정.
  • 경자보(1780년, 정조 4년): 기존의 기록을 계승.
  • 을유보(1825년, 순조 25년): 동일한 내용 반영.
  • 기미보(1979년): 시조를 후당 사람으로 기록하고, 고려 개국 벽상공신 활동을 구체적으로 서술.

이러한 족보는 함안 조씨가 고려 건국부터 조선 후기,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계보를 이어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특히 기미보에서는 조정의 업적을 상세히 기록해 후손들에게 뚜렷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결론

함안 조씨는 중국 당나라에서 귀화한 시조 조정으로부터 시작해, 고려 개국 공신과 조선의 충신·학자를 다수 배출하며 한국사에 이름을 남긴 성씨입니다. 항렬표는 후손들의 이름짓기 체계를 통해 세대별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족보는 가문의 뿌리와 업적을 기록해 후대에 전하고 있습니다. 인구수는 다른 본관에 비해 적지만, 역사적 무게와 가문의 정신적 자산은 한국 성씨 문화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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