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 상식/이름 항렬표

청송 심씨 항렬표, 안효공파 시조, 족보

by 하누혀누2 2025. 8. 5.
반응형

청송 심씨 항렬표, 안효공파 시조, 족보

청송 심씨의 역사와 의의

청송 심씨 종문 문양/앰블럼(구)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관직을 시작한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삼는 청송 심씨(靑松沈氏)는 2015년 인구 통계 기준으로 약 24만 명이 분포하여 본관별 인구수 37위를 차지할 만큼 비교적 많은 후손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청송 심씨는 조상 대대로 관직과 학문으로 빛을 발한 가문으로, 특히 고려 말·조선 초에 당대 최고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들을 배출하며 가문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가문의 뿌리는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심홍부가 문림랑과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하면서 사대부 가문으로 자리매김한 이래, 4세손 심덕부(沈德符)는 고려 우왕 때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승진하고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조선이 개국되자 회군공신 1등에 추록되고, 1399년 좌정승(左政丞)까지 올랐습니다. 반면 그의 동생 심원부(沈元符)는 변란기를 피해 두문동에 들어가 벼슬을 버리고 은둔함으로써, 후손들이 대대로 관직을 멀리하고 청송 고향에 거주하게 된 향파(鄕派)를 형성했습니다.

이처럼 청송 심씨는 경파(京派)와 향파로 크게 나뉘며, 경파는 다시 7대 분파로 세분화됩니다. 그중에서도 안효공파(安孝公派)가 가문 내에서 가장 번성하여 전체 후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청송 심씨 7대 분파의 구성

경파에 속하는 심덕부의 일곱 아들은 각기 도총제공파·판사공파·성주지사공파·인수부윤공파·안효공파·청원군파·동지총공파를 이루었고, 이들 파는 대대로 중·상급 관료를 배출하며 청송 심씨의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 도총제공파(都摠制公派): 심인봉
  • 판사공파(判事公派): 심의구
  • 성주지사공파(成州知事公派): 심계년
  • 인수부윤공파(仁壽府尹公派): 심징
  • 안효공파(安孝公派): 심온
  • 청원군파(靑原君派): 심종
  • 동지총공파(同知摠公派): 심정

이들 중 안효공파인수부윤공파가 특히 번성하여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청송 심씨 판사공파 족보 상하권


청송 심씨 안효공파(安孝公派)의 번성사

안효공파의 시조는 심덕부의 다섯째 아들 심온(沈溫)입니다. 심온은 조선 태종·세종 시절에 활약한 인물로, 다음과 같은 주요 업적과 일화를 남겼습니다.

  1. 세종의 국구(國舅)와 영의정 역임
    심온은 세종의 장인으로서 국구(國舅) 지위를 누렸고, 조선 최고 관직인 영의정까지 올랐습니다. 이로써 청송 심씨 가문은 조정 내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2. 철퇴 사건과 복권
    태종은 외척 세력을 경계하기 위해 국구였던 심온에게 철퇴를 가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때 가문이 위축되었으나, 문종 때 재조사를 통해 무죄가 밝혀지며 온전한 관직과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3. 세조 대 영의정 배출
    심온의 둘째 아들 심회(沈澮)는 세조 시절 영의정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윤비 폐비 사건에 연루되어 부관참시를 당했고, 그의 아들 심순문(沈順文)은 갑자사화 당시 참형을 당하는 등 가문에 큰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4. 후대의 국구·영의정 배출
    심온의 조카뻘인 심강(沈鋼)은 명종 시절 국구로 청릉부원군에 봉해졌고, 그의 손자 심열(沈悅)은 인조 때 영의정으로 등극했습니다. 심강의 딸이 명종비 인순왕후가 되면서 외척으로서도 사림 세력을 보호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5. 왕비 배출
    안효공파에서는 세종비 소헌왕후(昭憲王后), 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 경종비 단의왕후(端懿王后) 등 세 왕비를 배출하며 조선 왕실과 긴밀히 얽혀 ‘외척의 명가’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

청송 심씨 항렬표 (대동항렬)

아래는 청송 심씨 경파 및 향파를 아우르는 청송 심씨 항렬표 - 대동 항렬표입니다. 19세부터 45세까지 각 세대별 돌림자를 정리하였습니다.

세대 항렬자 세대 항렬자
19세 지(之) 32세 후(厚)
20세 능(能) 33세 양(亮)
21세 의(宜) 34세 남(南)
22세 택(澤) 35세 무(茂)
23세 상(相) 36세 용(鎔)
24세 섭(燮) 37세 한(漢)
25세 재(載) 38세 근(根)
26세 보(輔) 39세 형(炯)
27세 규(揆) 40세 균(均)
28세 용(用) 41세 진(鎭)
29세 영(寧) 42세 순(淳)
30세 기(起) 43세 동(東)
31세 장(章) 44세 병(炳)
    45세 곤(坤)

청송 심씨 안효공파 주요 인물 계보

안효공파를 개창한 심온을 중심으로 주요 후손 계보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심온(沈溫)
    • 세종 국구·영의정
    • 외손 소헌왕후 배출
  • 심회(沈澮)
    • 세조 영의정
    • 폐비 윤씨 사건으로 몰락
  • 심강(沈鋼)
    • 명종 국구·청릉부원군
    • 딸 인순왕후 배출
  • 심열(沈悅)
    • 인조 영의정
  • 심호(沈浩)
    • 경종 국구·청은부원군

결론

청송 심씨 안효공파는 고려 말과 조선 초·중기를 관통하며 조정 최고 요직인 영의정과 국구 지위를 여러 차례 배출한, 실로 조선사를 대표하는 외척 명문가였습니다. 세종비, 명종비, 경종비까지 왕비 셋을 배출한 가문으로서, 조선 왕실과 사림 간의 긴장과 조화를 만들어낸 중심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송 심씨는 오늘날에도 전국 각지에 후손이 흩어져 있으며, 본관 고유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문의 찬란한 영광과 함께 때로는 비극도 함께 겪은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 성씨 문화와 외척 정치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반응형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