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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조씨 항렬표, 시조, 역사, 돌림자

by 하누혀누2 2024. 7. 24.

목차

    창녕 조씨 항렬표, 시조, 역사

    창녕 조씨는 경상남도 창녕군을 본관으로 하여,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성씨입니다. 창녕 조씨의 시조는 조계룡(曺繼龍)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사위로 전해집니다.

    창녕조씨 앰블럼

    조계룡의 출생에 관한 전설은 매우 흥미롭고, 이 전설은 창녕 조씨의 역사와 전통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창녕 조씨 역사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조계룡의 어머니는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禮香)이라고 합니다.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 출신으로, 병을 앓고 있던 중 화왕산 용지에서 목욕과 기도를 올린 후 기적적으로 병이 치유되었고, 그녀는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장부를 보았는데, 장부는 그녀의 아들이 용의 아들 옥결(玉玦)의 아들이며, 이 아이가 잘 자라서 훗날 경상이 될 것이고, 그의 후손들이 번영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향은 아들을 낳았고, 그의 겨드랑이 아래에 ‘조(曺)’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이로 인해 왕은 그의 성을 조 씨로 하고 이름을 계룡으로 지었습니다.

    조계룡의 후손들은 신라 아간시중을 지낸 조흠의 아들 조겸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조겸은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덕공 공주와 혼인하였고, 태악서승이라는 벼슬을 지냈습니다. 이후 창녕 조씨는 창녕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며, 고려 후기 위화도 회군 이후 정사에 자주 등장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창녕 조씨 항렬표 돌림자

    항렬
    22세
    ▣承(승)
    23세
    秉(병)▣
    24세
    ▣煥(환)
    25세
    圭(규)▣, 喜(희)▣, 在(재)▣
    26세
    ▣鉉(현), ▣鎬(호), ▣鐘(종)
    27세
    永(영)▣, 海(해)▣, 洙(수)▣
    28세
    ▣根(근), ▣植(식), ▣穆(목)
    29세
    容(용)▣, 炯(형)▣, 然(연)▣
    30세
    ▣載(재), ▣坤(곤), ▣塤(훈)
    31세
    鎰(일)▣, 鍵(건)▣, 鏞(용)▣
    32세
    ▣泰(태), ▣淳(순), ▣淵(연)
    33세
    東(동)▣, 相(상)▣, 英(영)▣
    34세
    ▣燮(섭), ▣烈(열), ▣杰(걸)
    35세
    均(균)▣, 重(중)▣, 垣(원)▣
    36세
    ▣鎔(용), ▣鎭(진), ▣錫(석)
    37세
    潤(윤)▣, 準(준)▣, 汶(문)▣
    38세
    ▣稷(직), ▣栢(백), ▣杓(표)
    39세
    熙(희)▣, 煐(영)▣, 螢(형)▣
    40세
    ▣堉(육), ▣墩(돈), ▣培(배)
    41세
    鐫(전)▣, 銓(전)▣, 鑽(찬)▣
    42세
    ▣浩(호), ▣河(하), ▣洛(락)
    43세
    和(화)▣, 楨(정)▣, 桓(환)▣
    44세
    ▣勳(훈), ▣黙(묵), ▣愚(우)

    창녕 조씨의 주요 인물들

    창녕 조씨는 조선 시대에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며, 이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 조익수(曺益修): 태조 때 경상도병마도절제사를 지낸 인물로, 조선 초기 군사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 조상치(曺尙治): 세종 시대 문과 장원급제자로, 문학과 학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 조석문(曺錫文):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조선 중기의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였습니다.
    • 조위(曺偉): 성종 때 성리학의 대가로, 두시언해와 만분가를 지어 문학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 조신(曺伸): 조위의 동생으로, 시에 뛰어나며 중종의 명으로 2륜행실도를 편찬하였습니다.
    • 조계형(曺繼衡): 연산군 때 호조참판을 역임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정치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 조탁(曺倬): 광해군 때 공조참판을 지냈으며, 그 시대의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조응인(曺應仁):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광해군 때 대구부사를 지냈습니다.
    • 조희인(曺希仁): 인조 때 합천군수를 지내며 지역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 조정립(曺挺立): 인조 때 정주목사를 지냈으며, 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 조정생(曺挺生): 인조 때 창원부사를 지내며, 행정적 역할을 맡았습니다.
    • 조시일(曺時逸): 인조 때 예조좌랑을 역임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관료로 활동했습니다.
    • 조시량(曺時亮): 효종 때 양산군수를 지내며 지역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 조효창(曺孝昌): 숙종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학문과 교육에 기여하였습니다.
    • 조식(曺植):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이자 북인의 거두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등의 의병장들을 배출한 인물입니다.
    • 조진구(曺鎭九)조진억(曺鎭億): 고종 때 동지돈녕부사로 활동하였으며, 고종 시대의 중요한 관료들입니다.
    • 조시영(曺始永): 고종 때 관찰사로 활동하며 지역 사회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창녕 조씨 항렬표

    창녕 조씨는 49개의 분파가 있으나, 모두 단일 본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각 분파별 세수가 다소 맞지 않거나 오류가 있었던 것을 바로잡기 위해, 대종회에서 표준 항렬자로 통일하였습니다. 이는 창녕 조씨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한 집안으로서의 단결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표준 항렬자 체계는 창녕 조씨가 향후에도 일관된 가계와 항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결론

    창녕 조씨는 경상남도 창녕군을 본관으로 하여, 풍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성씨입니다. 시조 조계룡의 전설과 그 후손들의 업적은 창녕 조씨의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와 고려 시대에 걸쳐 많은 인물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창녕 조씨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현재에도 창녕 조씨는 항렬표를 표준화하여 단일 본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후손들에게도 지속적인 자긍심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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