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의령 남씨 항렬표, 역사
의령 남씨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
의령 남씨(宜寧 南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로, 그 기원과 역사는 매우 깊고 흥미롭습니다. 의령 남 씨는 경상남도 의령군을 본관으로 하며, 그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민의 본명은 김충(金忠)이며, 그는 원래 당나라 여남(汝南) 출신이었습니다. 755년, 당나라 안렴사로서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신라의 영덕군 축산면에 도착했고, 신라 경덕왕은 그를 남씨로 사성 하며 이름을 민으로 바꾸었습니다.
남민의 7대손인 진용(鎭勇)의 세 아들, 홍보(洪甫), 군보(君甫), 광보(匡甫)는 각각 영양, 의령, 고성에 관적을 두었습니다. 이 중 차남인 남군보는 고려 충렬왕 시절 밀직부사를 역임하며 의령 남씨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의령 남씨 항렬표
26世 기(基)○ | 27世 ○현(鉉) | 28世 윤(潤)○ | 29世 ○식(植) | 30世 병(炳)○ | 31世 ○균(均) | 32世 진(鎭)○ | 33世 ○구(求) | 34世 주(柱)○ | 35世 ○섭(燮) |
36世 규(圭)○ | 37世 ○호(鎬) | 38世 순(淳)○ | 39世 ○근(根) | 40世 영(榮)○ | 41世 ○찬(瓚) | 42世 종(鍾)○ | 43世 ○수(洙) | 44世 정(禎)○ | 45世 ○엽(燁) |
46世 주(周)○ | 47世 ○일(鎰) | 48世 영(永)○ | 49世 ○표(杓) | 50世 형(炯)○ | 51世 - | 52世 - | 53世 - | 54世 - | 55世 -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7世孫은 26代孫)
의령 남씨의 조선 시대 역할과 성취
의령 남씨는 조선 시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남군보의 현손인 남재는 조선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었으며, 태종 16년에는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남재의 손자 남지는 좌의정에, 남휘는 태종의 부마가 되었습니다. 또한 남곤은 중종 18년에 영의정에, 남이웅은 인조 때 춘성부원군에 봉군되며 좌의정에 올랐습니다. 남재의 후손인 남구만은 소론의 영수로 숙종 13년에 영의정이 되었고, 남유용은 영조 때 대제학을, 그의 아들 남공철은 순조 때 영의정을 역임했습니다.
의령 남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46명, 상신 6명, 대제학 6명을 배출하며 학문과 정치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의령 남씨의 분적
- 영양 남씨: 남민의 7대손 진용의 장남 남홍보
- 의령 남씨: 남민의 7대손 진용의 차남 남군보
- 고성 남씨: 남민의 7대손 진용의 3남 남광보
의령 남씨는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씨로, 그들의 기원과 역사는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가계의 역사를 넘어서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의령 남씨 연혁에 이어서: 본관 연혁과 인구수
본관 연혁: 경상남도 의령의 역사
의령(宜寧)은 그 역사와 지리적 특성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위치는 경상남도 중앙부에 있으며 낙동강 하류 서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의 명칭은 장함현(獐含縣)이었습니다. 경덕왕 16년인 757년에는 의령현으로 개칭되어 함안군의 영현이 되었습니다.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는 진주에 편입되었으며, 공양왕 2년인 1390년에는 감무가 파견되어 신번현을 병합했습니다. 태종 13년인 1413년에는 현으로 승격되었습니다. 특히, 선조 25년인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고종 32년인 1895년에는 지방제도 개정으로 의령군으로 개칭되며 진주부 관할이 되었고, 이후 1896년에는 경상남도 의령군이 되었습니다. 1979년에는 의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의령 남씨의 인구수 변화
의령 남씨의 인구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985년에는 약 31,495가구에 130,333명이었습니다. 2000년에는 46,529가구에 150,394명으로 늘었고, 가장 최근인 2015년 조사에서는 162,729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의령 남씨가 한국 내에서 상당한 규모의 대가족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의령 남씨의 역사는 단순히 한 성씨의 역사를 넘어서 한국의 지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본관인 의령의 역사적 변화와 그곳에서 성장한 의령 남씨 인구의 증가는 한국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룹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 성씨의 발자취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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