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김해 김씨 항렬표 돌림자 삼현파, 감무공파, 경파 문경공파, 좌정승공파
京派 경파 | 三賢派 삼현파 | 監務公派 감무공파 | 判書公派 판서공파 | 都摠管公 도총관공 | 府使公派 부사공파 | 文敬公派 문경공파 | 忠貞公派 충정공파 | 司正公派 사정공파 | 翰林公派 한림공파 | 左政丞公 좌정승공 | 判典公派 판전공파 | |
牧卿/목경 | 管/관 | 益卿/익경 | 不比/불비 | 敬臣/경신 | 瑾/근 | 琢/탁 | 球/구 | 利亨/이형 | 관/관 | 萬希/만희 | 明澤/명택 | |
67세 | 鉉 현 | 昌 창 | 錫 석 | 炳 병 | 柱주/周주 | |||||||
68세 | 濟 제 | 斗 두 | 泰 태 | 彩 채 | 光 광 | 炳병/致치 | ||||||
69세 | 植 식 | 容 용 | 相 상 | 鎔 용 | 運 운 | 祚 조 | ||||||
70세 | 顯 현 | 坤 곤 | 炫 현 | 洙 수 | 履 이 | 基 기 | 培 배 | 鍾 종 | ||||
71세 | 培 배 | 鍾 종 | 在 재 | 秉 병 | 燮 섭 | 抗 항 | 錫 석 | 鍾 종 | 泰 태 | |||
72세 | 鍾 종 | 洙 수 | 鎬 호 | 燮 섭 | 堯 요 | 鎰 일 | 厚 후 | 浩 호 | 澤 택 | 相 상 | ||
73세 | 泰 태 | 東 동 | 永 영 | 圭 규 | 鍾 종 | 澤 택 | 夏 하 | 炳 병 | 根 근 | 烈 열 | ||
74세 | 榮 영 | 熙 희 | 植 식 | 鎭 진 | 胄 주 | 東 동 | 寬 관 | 煥 환 | 炫 현 | 圭 규 | ||
75세 | 謙 겸 | 奎 규 | 炯 형 | 浩 호 | 東 동 | 炯 형 | 永 영 | 梓 재 | 在 재 | 圭 규 | 在 재 | 鎔 용 |
76세 | 載 재 | 錫 석 | 奎 규 | 榮 영 | 烈 열 | 均 균 | 模 모 | 炫 현 | 鍾 종 | 鎰 일 | 鎬 호 | 海 해 |
77세 | 鎭 진 | 永 영 | 鎔 용 | 炯 형 | 桓 환 | 鍾 종 | 熙 희 | 性 성 | 泰 태 | 淳 순 | 淳 순 | 植 식 |
78세 | 浩 호 | 植 식 | 淳 순 | 載 재 | 會 회 | 洛 락 | 載 재 | 錫 석 | 根 근 | 權 권 | 杓 표 | 炳 병 |
79세 | 根 근 | 動 동 | 鎬 호 | 泰 태 | 相 상 | 鏞 용 | 浩 호 | 炳 병 | 燦 찬 | 炯 형 | 埈 준 | |
80세 | 益 익 | 煥 환 | 洪 홍 | 柱 주 | 烈 열 | 泰 태 | 柱 주 | 圭 규 | 喆 철 | 均 균 | 鉉 현 | |
81세 | 用 용 | 基 기 | 權 권 | 炫 현 | 載 재 | 來 래 | 錫 석 | 錫 석 | 洛 락 |
版도判書 판도판서 | 副正公派 부정공파 | 參奉公派 참봉공파 | 承仕郞公 승사랑공 | 副護軍公 부호군공 | 判決事公 판결사공 | 芸慇公派 운은공파 | 副護軍公 부호군공 | 進士公派 진사공파 | 大栽學公 대재학공 | 崇政公派 숭정공파 | ||
添劒/첨검 | 平/평 | 麟瑞/인서 | 之瑞/지서 | 巨公/거공 | 用萬/용만 | 大震/대진 | 天翼/천익 | 虔/건 | 得河/득하 | 倧貞/종정 | ||
67세 | 賢 현 | 鉉 현 | 煥 환 | 基 기 | ||||||||
68세 | 致 치 | 澤 택 | 재재/榮영 | 滓 재 | 圭 규 | 鎬 호 | ||||||
69세 | 淵연/泰태 | 錫 석 | 鍊 련 | 炳 병 | 圭 규 | 植식/柱주 | 鎭 진 | 永 영 | ||||
70세 | 榮영/秉병 | 鷹 응 | 永 영 | 淙 종 | 烈열/換환 | 銖 수 | 煥 환 | 永 영 | 柱 주 | |||
71세 | 燮섭/煜욱 | 鍾 종 | 秉 병 | 洛락/泳영 | 植 식 | 圭 규 | 泓 홈 | 均균/坤곤 | 根근/東동 | |||
72세 | 永 영 | 圭규/吉길 | 洙 수 | 煥 환 | 炳병/相상 | 炳 병 | 鍾 종 | 林림/柱주 | 鍾종/鎭진 | 炳병/熙희 | ||
73세 | 柱 주 | 鍾종/鎔용 | 炳 병 | 在 재 | 燮섭/烈열 | 珉민/基기 | 永 영 | 炳병/煥환 | 洛 락 | 均균/基기 | ||
74세 | 炳 병 | 泰태/永영 | 煥 환 | 圭규/在재 | 洙수/浩호 | 板 판 | 基기/採채 | 秉 병 | 錫 석 | |||
75세 | 圭 규 | 相 상 | 圭 규 | 鉉현/錫석 | 相 상 | 熙 희 | 錫석/鍊연 | 炯 형 | 洙 수 | |||
76세 | 錫 석 | 炳 병 | 錫 석 | 源원/泰태 | 熙 희 | 海 해 | 河하/淳순 | |||||
77세 | 洙 수 | 均 균 | 永 영 | 榮영/植식 | 圭 규 | 東 동 | 相상/東동 | |||||
78세 | 東 동 | 秉 병 | 炯형/顯현 | 炫현/燮섭 | 熙희/燮섭 | |||||||
79세 | 燮 섭 | 燦 찬 | 採채/培배 | 在 재 | 在재/均균 | |||||||
80세 | 基 기 | 培 배 | 鎔용/鎭진 | |||||||||
81세 | 鍾 종 | 鏞 용 |
忠順偉公 충순위공 | 通仕郞公 통사랑공 | 通政公派 통정공파 | 判書公派 판서공파 | 參議公派 참의공파 | 隋城伯公 수성백공 | 副護軍公 부호군공 | 生員公派 생원공파 | 栗隱公派 율은공파 | 文川公派 문천공파 | 學生公派 학생공파 | ||
克梯/극제 | 汝龜/여구 | 昌壽/창수 | 盡業/진업 | 盡始/진시 | 昉/방 | 宇유/우유 | 鉉重/현중 | 遜/손 | 貴存/귀존 | 洛瑞/락서 | ||
11세 | 永 영 | 培 배 | 培 배 | 培 배 | 榮 영 | 柱 주 | ||||||
12세 | 植 식 | 鐘 종 | 鐘 종 | 鐘 종 | 謙 겸 | 炳 병 | ||||||
13세 | 炯 형 | 植 식 | 泰 태 | 泰 태 | 泰 태 | 在 재 | 均 균 | |||||
14세 | 圭 규 | 顯 현 | 鐘 종 | 榮 영 | 榮 영 | 榮 영 | 鎭 진 | 鍊연/淵연 | 청 청 | |||
15세 | 鎔 용 | 培 배 | 泰 태 | 燮 섭 | 燮 섭 | 燮 섭 | 浩 호 | 培 배 | 泰 태 | 흡 흡 | ||
16세 | 淳 순 | 鐘 종 | 榮 영 | 在 재 | 在 재 | 在 재 | 根 근 | 鐘 종 | 榮영/根 근 | 東 동 | ||
17세 | 東 동 | 泰 태 | 燮 섭 | 鎭 진 | 鎭 진 | 錫석/鎭진 | 柄 병 | 泰 태 | 熙 희 | 영 영 | ||
18세 | 換 환 | 榮 영 | 在 재 | 浩 호 | 浩 호 | 永영/浩호 | 榮 영 | 相상/柄병 | 圭 규 | |||
19세 | 用 용 | 燮 섭 | 鎭 진 | 根 근 | 根 근 | 東동/根 근 | 燮 섭 | 斗 두 | 鎭 진 | |||
20세 | 鎬 호 | 在 재 | 浩 호 | 性 성 | 炯 형 | 在 재 | 基기/時시 | 浩 호 | ||||
21세 | 泰 태 | 鎭 진 | 根 근 | 用 용 | 鎭 진 | 善선/鍾종 | 東 동 | |||||
22세 | 根 근 | 浩 호 | 性 성 | 浩 호 | 浩호/淳순 | 烈 열 | ||||||
23세 | 根 근 | 用 용 | 榮영/根 근 | 在 재 | ||||||||
24세 | 益 익 | 煥환/燮섭 | 鍾 종 | |||||||||
25세 | 載재/圭규 | 洙 수 |
※ 김해김씨 사이트 항렬표 [시조로부터 세수/파조로부터 세수 ]
김해 김씨 항렬표에 대한 이해
김해 김씨는 한국에서 가장 큰 성씨 중 하나로, 그 역사와 전통이 깊습니다. 김해 김 씨의 가계도를 정리한 '항렬표'는 세대별로 이름의 일부 글자가 정해져 있어, 그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름에 반드시 그 글자가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항렬자'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는 김해 김 씨의 다양한 파별 항렬자를 살펴보겠습니다.
계파는 금녕군파를 비롯한 142개파가 있으며 김유신의 직계종파인 3개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항렬은 평균적으로 삼현파가 사군파, 경파보다 2~3세대가량 높은 편입니다.
각 파별 항렬자의 특징
- 김녕군휘목경파(경파): 20세부터 '현', '배', '종' 등의 항렬자가 사용되며, 주로 '현', '배', '종', '태', '영', '섭', '재', '진' 등의 글자가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 감무공휘익경파(사군파): 17세부터 '석', '태', '상', '현', '재', '호' 등의 항렬자가 사용됩니다. 이 파에서는 '석', '상', '재', '영', '식', '형', '규' 등이 주로 나타납니다.
- 판도판서공휘관파(삼현파): 16세부터 '현', '재', '규', '창', '두', '용', '곤', '종', '수', '태', 등이 사용되며, 이 파에서 분파한 한림공파도 존재합니다.
- 부호군공휘거공파: 16세부터 '낙', '상', '병', '규', '현', '석', '태', '원', '식', '영', '형' 등의 항렬자가 사용됩니다.
- 승사랑공휘지서파: 18세부터 '치', '석', '영', '병', '환', '재' 등의 항렬자가 사용됩니다.
... 이 외에도 다양한 파가 존재합니다.
항렬자의 중요성
항렬자는 각 세대별로 고유한 글자를 정하여 세대를 구분하고 가족 간의 유대를 더욱 견고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김해 김 씨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가족 간의 정을 나누게 됩니다.
항렬표 활용 방법
항렬표를 활용하면 가족 행사나 모임에서 세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생아의 이름을 정할 때도 항렬자를 참고하여 전통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역사 연구나 가족 구성원을 찾을 때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김해 김씨의 항렬표는 세대별 항렬자를 통해 그 가문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가족 간의 유대를 표현하는 중요한 문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김해 김 씨가 얼마나 오랜 역사와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김해 김씨의 역사와 중요성
시조 김수로 왕과 그의 전설
김해 김씨는 한국에서 가장 큰 성씨 중 하나로, 가락국의 첫 번째 국왕인 김수로를 시조로 합니다. 김수로 왕의 탄생 전설에 따르면, 그는 금으로 된 알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설 때문에 성을 '김'이라 하였고, 여섯 황금알 중에서 가장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라고 지었습니다.
가야의 멸망과 신라 흡수
가락국이 가야 연맹의 중심이었지만, 10대 구형왕 시절 신라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구형왕은 신라에 항복한 뒤 상등의 작위와 가락을 식읍으로 받았습니다. 이후로 구형왕의 후손들도 신라에서 여러 벼슬을 지냈습니다.
김해 김씨의 신라에서의 역할
김무력은 신라에서 뛰어난 무장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의 아들 김서현은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의 딸과 결혼하여 벼슬을 얻었습니다. 김유신은 태종무열왕의 딸과 결혼하여 삼국통일에 큰 공헌을 했고, 그의 명성은 태대각간까지 이르렀습니다.
명문거족으로서의 위상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신라 김 씨(新羅 金氏)와 함께 김 씨 성씨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두 성씨는 명문거족으로 번성하였으나, 780년 혜공왕이 피살되면서 왕통이 단절되고 선덕왕 계열이 왕위를 이었을 때부터 김해 김 씨의 위세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쇠퇴와 현대까지
혜공왕이 피살당한 이후, 김해 김씨는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 경쟁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 6두품까지 추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김해 김 씨는 현재까지도 한국에서 가장 큰 성씨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김해 김씨
고려 시대의 명예
김해 김 씨는 고려 시대에도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23세손 김상좌는 고려의 창시자 왕건에게 위탁하여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의 공로로 삼중대광과 개국원훈에 올랐고, 그 후손들도 뛰어난 문무 명신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고려 시대 동안에만도 김해 김씨에서는 정승급 15명, 명신과 공신 10여 명,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다수의 유능한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역경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김해 김씨 출신은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고, 무오사화와 같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쇠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숙종조의 김우항 한 명만이 정승에 올랐습니다.
김희철 가문과 그 뒤이은 변화
더불어 김희철의 딸은 선조의 후궁 공빈 김 씨가 되어 김희철은 국구로 해령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아들 광해군은 왕으로 즉위한 뒤에 그의 어머니는 공성왕후로 추존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김해 김 씨는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가락국, 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 시대에 걸쳐 다양한 업적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창업에 큰 공을 세운 김상좌를 비롯하여 다수의 뛰어난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여러 정치적 사건과 왕실 내의 변동으로 인해 명성이 쇠퇴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역사와 전설, 그리고 업적을 통해 김해 김씨는 한국 역사와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사적 쇠퇴와 역경을 극복하여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성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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