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 모음: 은행나무에 관한 시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도시와 산사를 가득 채우는 은행나무는 오래전부터 시인들의 영감을 자극해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안도현, 문태준, 복효근, 고진하, 괴테, 김영일 시인이 노래한 은행나무에 관한 시를 소개하고, 가을 시 모음 작품 속에 숨은 상징과 정서를 깊이 있게 해설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분류와 문화·역사적 의미까지 폭넓게 살펴도록 하겠습니다.
가을 시 모음 작품별 원문과 해설
은행나무 / 안도현
산서면사무소 앞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어느날,
크게 몸을 흔들자
은행알들이 우두두두 쏟아져내렸다
그게 너무 보기 좋아서
모두들 한참씩 바라보았다안도현,『그리운 여우』(창비, 1997)
작품 해설
- 짧은 서사 속에 ‘우두두두’라는 의성어가 낙과의 역동성을 전달합니다.
- 시적 화자는 추락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참씩 바라’보며 황홀경의 순간으로 승화시킵니다.
- 낙과는 끝이 아니라 풍요의 완성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해 가을의 “충만함”을 강조합니다.
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 문태준
비구니 스님들 사는 청도 운문사 뒤뜰 천 년을 살았을 법한 은행나무 있더라
그늘이 내려앉을 그늘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
은행잎들이 지극히 느리게 느리게 내려 제 몸 그늘에 쌓이고 있더라
오직 한 움직임
나무는 잎들을 내려놓고 있더라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
나무가 황금사원 같더라 나무 아래가 황금연못 같더라
황금빛 잉어 비늘이 물속으로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있더라
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
바람 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다 부려놓고 가고 싶더라
내 죽을 때 눈 먼저 감고 몸이 무너지는 소릴 다 듣다 가고 싶더라
문태준,『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
작품 해설
- 불교적 무상과 직조된 정적(靜的) 시간이 핵심입니다.
- 은행잎 낙하를 ‘황금사원’ ‘황금연못’으로 비유함으로써 윤회와 열반의 이미지를 겹쳐 놓았습니다.
- ‘죽음’조차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귀의(歸依)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적 사유를 드러냅니다.
동정녀 은행나무 / 복효근
우리 집 은행나무
제 가지 휘어지도록 은행알 맺었다
은행나무 수크루 하나 다녀간 적 없는데
나는 안다
그녀의 수태비밀까지는 몰라도
눕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밤낮없이 기도하던 그 자세를,
또랑또랑 별의 눈망울을 닮은 은행은
그래서 또한 큰 염주알 같기도 하다는 것을
작은詩앗·채송화 동인, 『하늘우물』(고요아침, 2008)
작품 해설
- ‘수크루’(수나무)가 없음에도 열매를 맺었다는 설정은 성모 마리아의 처녀수태 모티프를 차용한 것입니다.
- 시적 화자는 종교적 기도 동작과 염주를 중첩해 신성과 숭고를 부각합니다.
- 현실적 식물학 정보(단성화 수분 가능성)를 넘어 기적과 같은 존재론적 경이를 드러냅니다.
구룡사 은행나무 / 고진하
올망졸망한 흥부네 새끼들처럼
무수한 잔가지들을 하늘 가득 거느리고 있었다
그 잔가지들을 다 품을 수 없어 나는
한아름도 넘는 나무 밑동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렇게, 사랑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어린 은행잎에 듣는 빗방울이 속삭여주었다.
고진하,『얼음수도원』(민음사, 2001)
작품 해설
- 큰 몸체를 ‘끌어안는’ 행동으로 포용과 사랑의 정의를 제시합니다.
- ‘빗방울’ 캐릭터를 의인화해 자연과 인간의 대화를 연출하며, 독자를 체험적 감각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은행나무 잎 / 괴테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내린
이 나뭇잎엔
비밀스런 의미가 담겨 있어
그 뜻을 아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오.
둘로 나누어진 이 잎은
본래 한 몸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에 답을 찾다
비로소 참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 내 노래에서 느끼지 않는가.
내가 하나이며 또 둘인 것을
작품 해설
- 괴테는 동서양 교류의 산물로서 은행잎을 소개하며 타자성과 자기 동일성을 탐닉합니다.
- 둘로 갈라진 잎을 두 존재의 합일로 해석, 독일 낭만주의의 ‘양면성’ 철학을 압축합니다.
은행잎 / 김영일
천년을 산다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걸으며
노랗게 곱게 물든 은행잎을 한 잎, 두 잎 주워
책갈피 사이에 끼워넣는다
천년전 선인도, 은행잎에 고운 사연 담으려고
나처럼 은행잎을 주웠을까
은행나무는 암수가 있어 사랑을 했기에
고운 사랑을 시로써 은행잎에 써놓으려고
은행잎은 예쁜 편지지처럼 생겼나보다
깊어가는 가을밤 책갈피속에 넣어두었던
은행잎을 꺼내 한 잎에는 사랑을
또 한 잎에는 마음을
그 다음 또 한 잎에는
천년을 사랑할 인연을 맺은 당신에게
나를 다 준다고 쓰련다
작품 해설
- 책갈피 속 은행잎은 시간과 기억을 보존하는 캡슐로 기능합니다.
- 반복적 병렬 구문이 심상(心象)의 축적을 일으켜 낭만적 서정을 극대화합니다.
은행나무가 한국 시단에서 차지하는 위상
- 도심-사찰 이중성
- 거리의 가로수부터 천년 고찰 사리수까지, 공간적 스펙트럼이 넓어 다양한 배경 설정이 가능합니다.
- 서정과 서사 모두에 적합
- 은행열매 낙과 소리처럼 동적인 이미지를 주거나, 느리게 내려앉는 잎새로 정적 묘사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 타문화 교류의 창
- 괴테 시처럼 은행잎은 한중일 문화권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세계문학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가을과 은행나무가 빚어내는 서정의 힘
- 가을의 짙은 햇살 아래 황금빛 잎사귀가 한꺼번에 물결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정시입니다.
- 은행나무는 공룡 시대부터 살아남은 ‘살아 있는 화석’으로, 인내와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 잎이 부채처럼 갈라진 독특한 형태 덕분에 동서양 예술에서 미적·철학적 메타포로 자주 활용되었습니다.
가을 은행나무 감상 포인트 체크리스트
- 낙엽이 아닌 ‘추락하는 빛’으로 바라볼 것.
- 열매 냄새의 양면성 - 혐오와 풍요를 동시에 체험.
- 잎맥 패턴을 핸드프린팅해 흩날리는 시각 리듬에 주목.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분류와 문화적 상징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분류
- 계: 식물계 Plantae
- 문: 은행문 Ginkgophyta
- 강: 은행강 Ginkgoopsida
- 목: 은행목 Ginkgoales
- 과: 은행과 Ginkgoaceae
- 속: 은행속 Ginkgo
- 종: 은행나무 Ginkgo biloba
은행나무가 가진 상징성
- 장수와 영원: 천 년 가까이 자라는 수령 덕분에 장구한 세월을 견디는 생명력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기억과 회복: 히로시마 원폭 이후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나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회복력’과 ‘희망’의 상징으로 재조명됐습니다.
- 양성성(젠더의 이중성): 암수딴그루 식물이라는 특징이 인간 관계와 사랑의 은유로 활용돼 왔습니다.
결론: 황금빛 낙엽 뒤에 숨은 내면 성찰
은행나무는 단순히 아름다운 가을 장관을 넘어,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회복력, 그리고 사랑의 본질까지 반추하게 하는 거울입니다. 시인들은 은행나무의 낙엽과 열매, 시간과 공간을 빌려 개인의 생과 죽음, 관계의 진폭을 섬세하게 탐색했습니다. 올가을, 은행나무 아래에서 천천히 잎을 줍고 냄새를 맡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시 속 문장들이 현실과 맞닿으며, 당신만의 새로운 서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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